안그래도 글이 점점 짧아져가면서 단상을 쓰는 거나 가능할 정도로 글쓰기가 안 됐는데, 트윗질을 하면서는 더 심해진 것 같다. 1000자가 됐든 140자가 됐든, 글자수의 한계를 정해놓고 글을 쓰면서 다듬기 시작하다 보면 결국 핵심의 두세 문장, 혹은 두세 문단의 말 외에 나머지는 모두 지리멸렬한 '부가적인 말'밖에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지우고 가지치고 하다보면 뼈대만 남고, 단상만 남고, 혹은 그 핵심적인 말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 글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이젠 아예 글쓸 시도조차 안 하게 됐다. 트위터란 것도 뭐 대단히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딱히 굉장히 재밌지도 않고 신기하지도 않고, 정보성의 멘트들, 예컨대 "무슨무슨 영화 몇월 몇일 국내 개봉 확정" 같은 뉴스나 전하는 정도니까, 대충 영화뉴스 중계업자 정도 되는 듯하다. 그나마 트위터도 요즘엔 하는둥 마는둥. 쓰고싶은 글도 하고싶은 말도 없고, 글을 쓰지 않으니 생각도 안 하게 된다. 한마디로 점점 바보가 돼가더니 요즘엔 정말 바보가 됐다. 무념무상 아무 생각이 없어...
그렇게나 영화보고 끄적이기 좋아하고 심지어 블로그에 온갖 사적인 일들도 떠벌리곤 했던 과거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변화는 스스로도 조금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요즘은 심지어 영화를 보는 일조차 심드렁하고, 책은 물론 다른 블로그를 보는 것조차 거의 하고있지 않다. 주간지나마 꼬박꼬박 사서 보았던 것도 해직과 함께 그만두었다. 한마디로 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생활. 그냥 게임하고 밥해먹고 자다가 일어나서 또 게임하고, 하는 게으른 생활이나 계속하고, 이젠 밥도 차려먹기 귀찮고, 해먹는 건 더 귀찮고.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깨작깨작 들어오는 알바나 깨작깨작 하고 있고. 그냥 무기력한 상태인데, 예전이라면 그 무기력한 상태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냥... 말했잖아, 아무 생각이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바닥을 긁을 거냐고, 바닥을 쳤으면 이제 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J.가 화를 내며 말하는데, 아니 뭐 나라고 계속 바닥 긁고 싶은 건 아닌데. 올라가는 것도 뭐 힘이 있어야 올라가는 거지, 바닥 치면 올라가는 것도 바닥 칠 때 발에 반동의 힘이 생기는 거니까 가능한 건데, 난 그냥 공중에서 팔을 퍼덕이는 느낌이다. 팔을 퍼덕일수록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몸은 점점 가라앉고 힘은 힘대로 빠지고... 그러니 팔을 퍼덕여도 가라앉을 거라면 뭐하러 힘들게 팔을 퍼덕이나, 뭐 그런 거다. 영화를 봐도 왜 보나 싶은 정도까지 온 거라면, 나름 심각하다면 심각한데. J.가 집 나간 직후 한 번 반짝 청소하고, 요즘은 청소해야 하는데... 하다가도 귀찮아, 설거지 해야 하는데... 하다가도 귀찮아, 영화 보러 가야 하는데... 하다가도 귀찮아. 밥 먹는 것도 귀찮아. 기껏 죽 끓여놓고 손도 안대고 있다가 상해서 버리고. 화장실에 꽉꽉 채운 쓰레기봉투 하나랑, 봉투에 넣지 않은 채 쌓아둔 쓰레기 한 무더기를 몇 주째 방치하고 있다가 어젯밤에 비로소 봉지 두 개를 밖에 내다버렸다. 설거지는 욕 먹어가며 결국 J.한테 시켰고, 청소를 해야 하는데... 쓰레기장이 된 방에서 살다보니 나 자신도 쓰레기의 일부가 된 느낌. 거기서 뒹구는 우리 애들만 불쌍하다. 하지만 귀찮아... 벌써 일 주일 전에 인터뷰한 거 정리해서 기사로 써야 하는데... 귀찮아. 금요일 번역거리 하나 들어왔는데... 인터뷰 끝내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 언론시사를 한다는데 그냥 포기할 예정. 내일 오전에 하는 <히어애프터>나 볼란다. 그 와중에 결국 부모한테 가서 손 벌렸다. 대학 졸업 후 처음이다. 대학 때도 다른 건 어떻게든 내가 해결하고 등록금만 신세졌는데, 그러다 4학년 마지막 학기는 내 힘으로 등록금을 냈었는데, 졸업 후엔 대충 동생들 등록금도 보태줬는데. 엄마가 엄마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나 집세 내라고 엄마 몰래 모아둔 비상금을 털어주셨다. 아 정말 나 인간쓰레기 맞는듯. ㅋㅋ
아오, 근데 푸념도 버릇되는데. 벌써 버릇된 거 같애, 어뜨카지.
애초 한겨레의 짧은 기사는 최고은 씨가 유명을 달리한 후 며칠이나 후에 나온 것이었지만, 기사가 나오자마자 온통 떠들썩한 뉴스가 됐다. '창피하지만 남는 밥과 김치'를 이웃에 부탁하는 그 절박함은, 온갖 맛집기행과 식도락이 만인의 취미가 된 듯한 인터넷 세계에선 확실히 놀랍고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식도락과 맛집기행 포스트를 올리는 상당수의 불특정 블로거들이 실상은 자신도 불안정한 노동과 저임금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식도락과 맛집 글은 특정 블로거만이 아니라 '너도나도' 올리는 글 아니던가.) 즉 최고은 씨의 죽음은 "세상에 이런 일이!" 급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남 일이 아닌' 일이라는 점, 즉 상당히 모순적인 듯 보임에도 모순이 아닝란 점에서 더욱 위력적인 힘을 가진다. 특히 트위터에서 최고은 씨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내 추측으로는 트위터 이용자의 상당수가 문화적인 것엔 민감하면서 실상은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2, 30대가 다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자신이 실제로 문화콘텐츠산업의 열악한 창작노동자인 경우도 많고.
하지만 며칠 후 민중의소리에서 최고은 씨가 그 이웃에게 남겼다는 그 쪽지를 직접 공개하면서 한겨레의 기사는 도마에 오르게 된다. 한겨레의 최초 보도기사에 포함된 '요악'이 최고은 씨의 실제 쪽지와 다른 점은 '창피하지만 남는 밥과 김치 있으시면'의 원래 내용이 '쌀과 김치 더 있으시면...'이었다는 점이다. '쌀'과 '남는 밥'의 차이. 사실 큰 차이가 아니라면 아니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 버렸다. 이 때문에 혹자들은 "한겨레가 소설을 창작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글쎄다, 그렇게 쉽게 말하기도 좀 애매하다. 오히려 계속 무언가 묵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님에도 큰 차이가 만들어져 버렸다는 기묘한 역설 때문이다. '남는 밥'이 좀더 구차스러운 이미지이긴 해도 남는 밥 좀 달라는 말과 쌀 좀 달라는 말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사실 그 정도의 '마사지'는 기사를 좀더 임팩트있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수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 한겨레에 기사가 났을 때 소수긴 해도 돼먹지 않은 인간들은 "젊은 사람이 멀쩡한 사지 놔두고 알바 하나 안 한 거냐"며 고인을 매도했고, 이런 매도에 분노하면서도 일각에서 '참 무능력하고 미련한' 사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도 분명 사실이다. '창피하지만'이라는 문구(이 문구는 원래 쪽지엔 있지도 않았지만)는 '그럼에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참 어려워하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경우는, 돼먹지 않은 인간들의 돼먹지 않은 트윗들 보고 혀를 끌끌 차고 분노하면서도 - 사실 트위터에 올린 일련의 몇 개의 글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하지만 실은 분노의 결과물이었다 - 그녀가 '조금 주변머리 없는 축에 속하는, 나랑 비슷한 성격의 사람'일 거란 생각을 조금 하긴 했더랬다. '아마 아파서 일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도 조금. 그리고 어려운 기간이 계속되니 사정이 별 다를 바 없는 친구나 선후배한테 손 벌리기도 쉽지 않았을 거라고, 처음 몇 번 손을 벌렸어도 가난의 기간이 길어지니 그조차도 못 하게 됐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쌀'의 원문이 공개됐을 때, 그 쪽지는 그러니까 '예술가 한답시고 아사할 지경이 되도록 세상물정도 모르고 융통성도 없다가 죽어 비련의 여주인공이 돼버린 무능력하고 미련한 사람'의 이미지는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거기엔 오히려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해 생활이 곤궁하기는 해도 이웃에 폐를 끼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자신을 도와주는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잘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사람, 곧 밀린 돈을 받으면 또 어떻게든 생활을 꾸리게 될 거란 희망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참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살아갔던 보통의 사람이 있었다. 참 소박하고 심성 고운 예쁜 사람이었구나, 라는 게 실제 쪽지내용을 보고 난 후의 첫 인상이었다. 불과 '쌀'과 '남는 밥'의 차이인데, 이 소소한 글자의 차이가 참으로 많은 이미지의 차이를 낳은 것이다.
애초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아니지만 한겨레의 다른 기자는 "아사와 병마로 쓸쓸히 죽어갔다는 데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항변, 혹은 옹호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더랬다. 한참 조영일과 논쟁하다 블로그를 닫아버린 김영하가 '최고은은 병 때문에 죽었고, 끝까지 자기 삶을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며 한겨레의 첫 기사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자 이것이 다시 트위터에 대량 RT가 됐기 때문이다. 마침 그 기자가 예전에 취재현장에서 마주쳐 명함도 나누고 트위터 팔로잉도 하고 있던 사람이라,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 사람을 수신으로 한 트위터를 몇 개 쓰면서, 비로소 한겨레 기사의 마사지가 이 사람 말대로 '본질을 왜곡한 면은 없'음에도 왜 '커다란 간극을 느끼게' 하는지, 그리하여 왜 내가 묵직한 거슬림과 약간의 반감까지도 느꼈는지 정체를 비로소 정확히 언어화할 수 있게 됐다. 비극의 스펙터클을 강조하느라 정작 망자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린 것.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을 열심히 살다 간, 존중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한 명의 실재했던 사람이었음에도, 이 사람은 비극적 서사에서 극적 클래이맥스를 강조하기 위해 동원된 그저 한 명의 '캐릭터'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이다. 기자가 부고기사를 쓸 때, 비극적인 어떤 죽음을 전할 때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반면교사로 일깨워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기자뿐이랴, 이는 글쓰는 이가 어떤 사람을 자신의 글에 등장시킬 때, 혹은 다른 분야의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다른 사람을 담을 때에도 유념해야 할 가치이리라.
이와는 별개로, 최고은 씨의 죽음 이후 나오는 무수한 말들이 '영화계 모순'을 지적하는 말로만 정리돼 가는 것이 나는 한편으로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물론 영화계의 모순이 그녀의 죽음에 지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아니 오히려 제2의 최고은이 나오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영화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녀의 직업이 시나리오 작가였으니 시나리오작가협회를 비롯해 영화계에서 나서서 제2의 최고은을 막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 영화뿐이랴. 나는 애초 이 문제가 청년빈곤 문제와 뗄래야 뗄 수가 없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보장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 얼마든지 직군과 나이를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죽음이 영화계의 문제로 집중담론화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죽음들을 가리고 있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영화계 모순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른 분야, 다른 직군에서의 최고은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얘긴지. 최고은 씨같은 '비혼의 1인가구'의 경우가 적어도 서울에서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지만, 대체로 1인가구는 '가구'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젊은 사람은 노동가능하단 이유로 빈곤해도 빈곤을 인정받지 못하며,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아픈 것도 죄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가난한 사람에겐 한마디로 '병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마음씨 좋고 착한 이웃의 따뜻한 선행과 자선에 맡기기에는, 대도시에서 빈곤층으로 살아가는 인구의 수가 너무나도 많고 소위 '서민'이라는 사람들의 삶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나는 매우 절망적이게도, 이 사회에선 앞으로도 한동안은 무수한 최고은이 나타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예술가 직업이 아니어서, 눈에 띄는 선망의 직업이 아니어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서, 젊거나 예쁘지 않아서, 존재했는지조차도 모르게 지워져 버릴 것이라고 우울한 전망을 한다.
이렇게 비관적인 것은 이 나라에서 지금 복지담론의 수준이란 것이 고작 공공급식에 올인하며, 고작 공공급식을 갖고 복지 포퓰리즘이니 뭐니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며 무상이니 유상이니 하는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거. 어느 사회든 사회 존속을 위해 비혼가정보단 혼인가정을 더 지원하기 마련인데, 한국에서 빈곤가구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감생심 1인 비혼가정의 복지를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수준이냐는 거. 게다가 한국에선, 세금으로 만들어 내 권리가 되어야 복지가 무슨 구걸이나 하는 듯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으로 카테고리화됐다. 연애하고서부터 줄어든 걱정이지만 사실 나는 한동안 4, 50대에 홈리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상시적으로 가졌던 사람으로서는, 그저 한숨만 길게 나올 수밖에.
그런가 하면 영화노조가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란 사실을 알고 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조가 활동을 하게 되고, 더욱이 격하고 투쟁적인 노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노조뿐 아니라 다른 직군의 노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노조'란 것을 좀 다른 눈, 그러니까 좀더 친근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